# 몇 해 전 ‘노무현이 박정희를 이길 수 없는 이유’(본지 2005년 1월 28일자 ‘중앙시평’)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 칼럼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이 민감하다 못해 거세고 거친 덕분에 신문칼럼이 그날 밤 텔레비전 9시 뉴스데스크에 등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현 대통령의 전화였다. 만나자는 얘기였다.
#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단둘이 만난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중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얽힌 일화가 있었다. 내용인즉 이렇다. 정 회장은 배운 게 많지는 않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푸는 수가 무궁무진했다. 그래서 ‘만수(萬數)’라 불렸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수가 만수인 정 회장 밑에서 이 사장이 살아남는 것을 보면 그도 수가 구천(九千)은 되는가 보다”라고 말했다. 그때 이 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되받았다. “만수 밑에서는 구천수 아니라 구천구백구십구수도 살아남기 어렵다. 내가 만수인 정 회장 밑에서 용케 버틴 것은 오히려 단수(單數)였기 때문이다.”
# 생전에 정 회장은 직면한 사태 앞에서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판단해 방향을 잡고 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탁월했다. 그 다음 결행은 이 사장의 몫이었다. 그 역시 결행력은 탁월했다. 세월이 흘러 만수 정주영은 가고 단수 이명박만 남았다. 물론 그가 서울시장일 때 단수 기질은 특장점으로 작용했다. 온갖 반대를 물리치고 청계천 사업을 성사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 하지만 대통령이 되자 그의 단수 기질은 되레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무심코 던진 말과 행동이 국민의 골을 지른 경우가 적잖았다. 거의 사그라져 가던 촛불을 다시 불붙이고 서울 한복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데 이 대통령의 단수 기질이 한몫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만약 만수인 정 회장이 오늘 살아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마도 그 특유의 억양으로 이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해봤어?” 청와대로 가겠다고 밤마다 광화문에서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앞에 직접 가서 계란 맞고 돌 맞을 각오하고 만나봤느냐고 되물었을 것이다.
# 정주영의 컨테이너는 터진 둑을 막았지만 이명박의 컨테이너는 ‘명박 산성’으로 희화화되며 국민과의 소통 단절의 단적인 상징이 되고 말았다.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도를 넘은 시위대는 분명 문제다. 하지만 밤마다 서울 한복판이 무법천지가 돼버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불쌍한 경찰력에만 의존해 청와대로 가는 길목만 막고 있는 것도 결코 능사가 아니다. 지금이 경무대 쳐들어오는 학생과 시민들이 무서워서 막던 1960년 4·19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5공식 방법으로 거리를 싹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은 더 미친 짓이다.
# 결국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이 밤마다 무정부 상태가 돼버리는 작금의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거의 유일한 해법은 대통령이 계란 맞고 돌 맞을 각오를 하고 시위대 앞으로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다. 단수인 이 대통령은 할 수 있다. 그런 대통령에게 국민은 결코 돌 던지지 않는다. 만약 그 상황에서 대통령을 직접 위해하는 이들이 있다면 더 많은 국민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앞으로의 4년 넘는 임기를 제대로 위엄과 영이 서게 가져갈 수 있다.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만 바라보고 아침이슬만 흥얼거려선 안 된다. 오히려 청와대 문을 열고 광화문으로 직접 나가라. 국민을 이기려 하지 말라. 국민 이길 대통령은 없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 동상 보면 떠오르는 한마디가 있지 않는가.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것이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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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적으로 마이너리티다. 48.7%의 득표율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몇 가지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 대선에서 전국 248개 시·군·구 중 이 대통령의 득표율이 5년 전 한나라당 후보 때보다 낮은 게 101곳이나 된다. 17대 대선은 10년 만의 정권교체 꿈에 보수의 결집이 유난했었다. 그런데도 5년 전보다 득표율이 낮아진 곳이 100곳을 넘었다.
또 다른 통계. 노무현 정부 후반부인 2006년 초 한 여론조사 기관은 국민들의 이념성향을 조사해 보수 39.1%, 진보 28.6%, 중도 32.3%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얻은 표는 26.1%로 민노당 권영길 후보가 얻은 표까지 합하면 이 여론조사에서 진보라고 답한 28.6%와 거의 일치한다. 반면 보수와 중도를 합친 71.3% 중 48.7%가 이명박으로, 15.1%가 이회창으로 갈라졌다. 이 대통령의 득표율 속엔 보수성향 유권자만큼의 중도성향 유권자가 포함돼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꾸로 이 대통령이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전폭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선거참모들도 이를 간파했다. 한 참모가 쓴 『대통령을 만든 마케팅 비밀 일곱 가지』란 책에는 ‘집안은 물론 산에까지 냄새가 퍼지도록 맛있는 먹이를 만들면 집토끼는 문이 열려 있어도 꼼짝하지 않을 것이고 산토끼가 집 주위에 모여들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집토끼인 보수 표와 산토끼인 중도 표를 이종교배했다는 설명도 있다. 결국 한나라당 후보란 브랜드로 보수의 기본을 확보했고, 실용이라는 새 브랜드로 중도성향의 소비자까지 매료시킨 결과가 48.7%였다.이 대통령의 탈이념성은 5월 20일 손학규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 때 “나는 보수가 아니다”라는 커밍아웃 발언까지 낳았다.
한국 정치에서 정치 시장의 이념성은 정국이 평온할 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형 이슈가 사회 전체를 흔들 때 수면 밑에 움츠리고 있던 이념 대결은 선명해진다. 그 결과 쇠고기 정국 두 달을 헤매는 동안 ‘마이너리티 정치인 이명박’의 본모습은 발가벗겨졌다. 진보로부턴 ‘정권 타도’ 대상으로 전락했고, 보수로부턴 ‘무능한 정부’로 비판받고 있다. 실용에 매료됐던 중도로부터도 경제 실력을 의심받고 있다. 대통령의 사람들은 이제 지지율 하락이 바닥을 쳤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대중의 호남, 노무현의 진보 같은 절대적 팬클럽을 갖고 있지 못한 이 대통령의 바닥은 더 깊을 수도 있다.
그래서 2007년 12월로 되돌아가기 위한 길은 험하고 고통스럽다. 조급한 대통령의 사람들 중에선 “할 수 없다. 집토끼만이라도 제대로 잡자”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되돌아가는 길은 지난 6개월 동안 주렁주렁 치장한 장식을 벗어던지고 다시 빈 몸이 돼야 한다. 마이너리티를 인정하고 흩어진 48.7%를 끌어 모아야 한다.
권력의 나눔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선 직후 대통령의 사람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자신없어 하는 부분이 뭐냐”고 물어본 일이 있다. 공통된 얘기는 “정치와 외교를 잘 모른다”였다. 그렇다면 자신없는 정치를, 잘 모르는 외교를 손에 꽉 쥐고 있을 필요가 없다. “정치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외교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과감하게 권한을 주면 된다. 권력은 쥐고 있다고 커지는 게 아니다. 놓아주는 권력이 더 무서울 수 있다. 권한을 주되 대통령은 실적으로 평가하면 된다. 그게 CEO 리더십이다. 그 대신 할 일이 있다. 누구도 대신 못하고,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전공에 헌신하는 일이다. 정치를 잘 알고, 외교를 잘해서 ‘이명박 대통령’으로 뽑힌 게 아니질 않은가. 추가로 관료들의 숨통도 이젠 터주자. 지금 관가에선 ‘관란(官亂)’이란 얘기가 나돌 정도로 공무원의 사기가 죽어 있다.
박승희 정치부문 차장
이제 양쪽에서 까이는 명박
#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단둘이 만난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중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얽힌 일화가 있었다. 내용인즉 이렇다. 정 회장은 배운 게 많지는 않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푸는 수가 무궁무진했다. 그래서 ‘만수(萬數)’라 불렸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수가 만수인 정 회장 밑에서 이 사장이 살아남는 것을 보면 그도 수가 구천(九千)은 되는가 보다”라고 말했다. 그때 이 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되받았다. “만수 밑에서는 구천수 아니라 구천구백구십구수도 살아남기 어렵다. 내가 만수인 정 회장 밑에서 용케 버틴 것은 오히려 단수(單數)였기 때문이다.”
# 생전에 정 회장은 직면한 사태 앞에서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판단해 방향을 잡고 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탁월했다. 그 다음 결행은 이 사장의 몫이었다. 그 역시 결행력은 탁월했다. 세월이 흘러 만수 정주영은 가고 단수 이명박만 남았다. 물론 그가 서울시장일 때 단수 기질은 특장점으로 작용했다. 온갖 반대를 물리치고 청계천 사업을 성사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 하지만 대통령이 되자 그의 단수 기질은 되레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무심코 던진 말과 행동이 국민의 골을 지른 경우가 적잖았다. 거의 사그라져 가던 촛불을 다시 불붙이고 서울 한복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데 이 대통령의 단수 기질이 한몫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만약 만수인 정 회장이 오늘 살아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마도 그 특유의 억양으로 이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해봤어?” 청와대로 가겠다고 밤마다 광화문에서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앞에 직접 가서 계란 맞고 돌 맞을 각오하고 만나봤느냐고 되물었을 것이다.
# 정주영의 컨테이너는 터진 둑을 막았지만 이명박의 컨테이너는 ‘명박 산성’으로 희화화되며 국민과의 소통 단절의 단적인 상징이 되고 말았다.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도를 넘은 시위대는 분명 문제다. 하지만 밤마다 서울 한복판이 무법천지가 돼버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불쌍한 경찰력에만 의존해 청와대로 가는 길목만 막고 있는 것도 결코 능사가 아니다. 지금이 경무대 쳐들어오는 학생과 시민들이 무서워서 막던 1960년 4·19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5공식 방법으로 거리를 싹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은 더 미친 짓이다.
# 결국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이 밤마다 무정부 상태가 돼버리는 작금의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거의 유일한 해법은 대통령이 계란 맞고 돌 맞을 각오를 하고 시위대 앞으로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다. 단수인 이 대통령은 할 수 있다. 그런 대통령에게 국민은 결코 돌 던지지 않는다. 만약 그 상황에서 대통령을 직접 위해하는 이들이 있다면 더 많은 국민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앞으로의 4년 넘는 임기를 제대로 위엄과 영이 서게 가져갈 수 있다.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만 바라보고 아침이슬만 흥얼거려선 안 된다. 오히려 청와대 문을 열고 광화문으로 직접 나가라. 국민을 이기려 하지 말라. 국민 이길 대통령은 없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 동상 보면 떠오르는 한마디가 있지 않는가.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것이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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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적으로 마이너리티다. 48.7%의 득표율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몇 가지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 대선에서 전국 248개 시·군·구 중 이 대통령의 득표율이 5년 전 한나라당 후보 때보다 낮은 게 101곳이나 된다. 17대 대선은 10년 만의 정권교체 꿈에 보수의 결집이 유난했었다. 그런데도 5년 전보다 득표율이 낮아진 곳이 100곳을 넘었다.
또 다른 통계. 노무현 정부 후반부인 2006년 초 한 여론조사 기관은 국민들의 이념성향을 조사해 보수 39.1%, 진보 28.6%, 중도 32.3%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얻은 표는 26.1%로 민노당 권영길 후보가 얻은 표까지 합하면 이 여론조사에서 진보라고 답한 28.6%와 거의 일치한다. 반면 보수와 중도를 합친 71.3% 중 48.7%가 이명박으로, 15.1%가 이회창으로 갈라졌다. 이 대통령의 득표율 속엔 보수성향 유권자만큼의 중도성향 유권자가 포함돼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꾸로 이 대통령이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전폭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선거참모들도 이를 간파했다. 한 참모가 쓴 『대통령을 만든 마케팅 비밀 일곱 가지』란 책에는 ‘집안은 물론 산에까지 냄새가 퍼지도록 맛있는 먹이를 만들면 집토끼는 문이 열려 있어도 꼼짝하지 않을 것이고 산토끼가 집 주위에 모여들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집토끼인 보수 표와 산토끼인 중도 표를 이종교배했다는 설명도 있다. 결국 한나라당 후보란 브랜드로 보수의 기본을 확보했고, 실용이라는 새 브랜드로 중도성향의 소비자까지 매료시킨 결과가 48.7%였다.이 대통령의 탈이념성은 5월 20일 손학규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 때 “나는 보수가 아니다”라는 커밍아웃 발언까지 낳았다.
한국 정치에서 정치 시장의 이념성은 정국이 평온할 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형 이슈가 사회 전체를 흔들 때 수면 밑에 움츠리고 있던 이념 대결은 선명해진다. 그 결과 쇠고기 정국 두 달을 헤매는 동안 ‘마이너리티 정치인 이명박’의 본모습은 발가벗겨졌다. 진보로부턴 ‘정권 타도’ 대상으로 전락했고, 보수로부턴 ‘무능한 정부’로 비판받고 있다. 실용에 매료됐던 중도로부터도 경제 실력을 의심받고 있다. 대통령의 사람들은 이제 지지율 하락이 바닥을 쳤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대중의 호남, 노무현의 진보 같은 절대적 팬클럽을 갖고 있지 못한 이 대통령의 바닥은 더 깊을 수도 있다.
그래서 2007년 12월로 되돌아가기 위한 길은 험하고 고통스럽다. 조급한 대통령의 사람들 중에선 “할 수 없다. 집토끼만이라도 제대로 잡자”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되돌아가는 길은 지난 6개월 동안 주렁주렁 치장한 장식을 벗어던지고 다시 빈 몸이 돼야 한다. 마이너리티를 인정하고 흩어진 48.7%를 끌어 모아야 한다.
권력의 나눔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선 직후 대통령의 사람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자신없어 하는 부분이 뭐냐”고 물어본 일이 있다. 공통된 얘기는 “정치와 외교를 잘 모른다”였다. 그렇다면 자신없는 정치를, 잘 모르는 외교를 손에 꽉 쥐고 있을 필요가 없다. “정치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외교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과감하게 권한을 주면 된다. 권력은 쥐고 있다고 커지는 게 아니다. 놓아주는 권력이 더 무서울 수 있다. 권한을 주되 대통령은 실적으로 평가하면 된다. 그게 CEO 리더십이다. 그 대신 할 일이 있다. 누구도 대신 못하고,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전공에 헌신하는 일이다. 정치를 잘 알고, 외교를 잘해서 ‘이명박 대통령’으로 뽑힌 게 아니질 않은가. 추가로 관료들의 숨통도 이젠 터주자. 지금 관가에선 ‘관란(官亂)’이란 얘기가 나돌 정도로 공무원의 사기가 죽어 있다.
박승희 정치부문 차장
이제 양쪽에서 까이는 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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